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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stage : 이끄심을 향한 준비

아버지 인도하심, 그 준비 1

by 샬롬진 2025. 3. 4.

태어나 자란 곳은

지금은 성북구 길음역 바로 앞

돈암 동부센트레빌 아파트 자리에요,

예전엔 서라벌고등학교가 거기 있었죠.

놀랍게도 거기 아직도

지은 지 40년 넘은

3층짜리 분홍색 아파트가 있습니다.

돈암 현대 아파트에요.

12살부터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거기 살았습니다.

아파트 담장 아래 작은 화단에

해바라기, 과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가을마다 씨앗을 모아

봄에 줄 맞춰 심은 기억이 아련히 납니다.

아파트는 나지막한 산자락에 있죠,

고려대와 연결된 개운산이에요.

학교 마치면 동네 아이들과 그 산으로

뛰어다니며 논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근처 성신여중에 입학해요.

모두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절반 이름을 다 외우고 다닐 만큼

열과 성으로 참 많이 논 거 같아요.

여기까지 보면

그저 그렇게 평범히 지낸 아이지요?!


예전은 국민학교라 불렀어요,

6학년 어느 날 어린이신문에

"외국어 고등학교 신설"이란

기사를 봅니다.

신기했어요,

'한 번 가볼까?'

이 생각이

제 인생 방향을 바꾸는 계기였습니다.

초 중학교 평범하던 아이가

그렇게 준비 없이 중곡동에 있는 외고에

덜컥 합격합니다.

가보니, 그 학교가

이미 강남권에는 소문난 곳이라

전교 탑이나 학생회장단들이

전략적으로 입학한 곳이었습니다.

그저 외국어가 신기해 입학했는데,

대한민국 최고를 목표로 하는 학교니

전 과연 즐겁고 행복했을까요?

매일 야자 전 저녁시간마다

학교 앞 성당에 가서

꽉 막힌 가슴을 부여잡고

기도만 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마흔 살부터는

평신도 선교사로 살겠습니다."

왜 이 기도가 나왔는 지

그 땐 몰랐습니다.

나이 마흔한 살이던 어느 가을,

고등학생 땐 모르다 사회에서 만난 동창이

이런 말을 해주더군요.

"그때 모두 힘들었어,

우리 부모님은

제발 학교 졸업만 해달라고 하셨거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를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 인도하심의 첫걸음임을 알았어요.

내딛자마자 진흙탕이었지만!


성문종합영문법에 질릴 대로 질려

영어가 싫었던 제가

어찌 된 영문인지 영문학과로 진학합니다.

역시 당연히 바깥으로 시선이 향하니

공부 대신 방송반에 들어갑니다만

1년 반 정도 후 동아리에서 나오고,

그 즈음 시작한

종편 어느 방송국 리포터로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요.

쉰이 넘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겸손했더라면...

그저 그 자리에 감사했더라면...‘

방송국에 잘 자리 잡았을 텐데...

철없는 20대 초반이니

또 다른 세계로 눈을 돌립니다.


"진이야, 스페인 세비야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린대,

한국관에

영어, 스페인어 하는

여대생 알바가 필요하다는데

같이 가볼래?"

스페인어를 대학까지 이어 전공하던

쌍동이 동창에게

이런 제안이 들어옵니다.

( 이들은 지금 각각

스페인, 페루선교사로 사역중입니다.)

또 다른 신세계로 발을 내딛게 되죠.

1992년이니, 그때를 생각하면

어린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듯한

아련함으로 남아 오네요.

128개국이었어요,

거기 참여한 나라숫자가요.

한국어만큼

영어와 스페인어, 그 외 언어가

아주 자연스레 흘러 다니던 장소였죠.

다양한 언어만큼

생각과 표현방식도 다양했고,

그렇게 세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종로 학원으로

스페인어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6개월 정도 다니니

그간 입으로만 하던 말들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더군요.

 


"모두투어란 회사야,

오늘 내가 서류내고 면접볼거야.

옆에 얌전히 잘 있어야 해."

1994년 8월, 기록에 남을만큼 뜨겁던 날,

세비야에서 같이 일한,

독일어 쓰던 언니가

얼마 전 딴 가이드 자격증 덕에

모두투어 국외여행 인솔자로 입사하며

서류 제출 때 우연히 데리고 갔습니다.

거기서 가만히 절 보시던,

후에 모두투어 부회장으로 은퇴하신

홍기정이사님께서

“동생도 잘할 것 같네요,

서류해오실래요?”

맞아요, 사람 눈에는 우연이었죠.

하지만, 그 우연이 또 한 번 저를

전 세계란 큰 바다로 이끄신

하나님 섭리였습니다…

2016년 5월 모로코에서